해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 저켠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 본 적 있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 지고 마는 거야...


모순 / 양귀자



나는 애인에게 묻곤 한다.

"내가 죽으면, 당신 슬플까?" 라고

"그야 슬프지. 아주 슬프지."

애인이 그렇게 대답하면 나는 이어, "왜?" 라고 묻는다.

애인은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럼 당신은?" 하고 내게 되묻는다.

몸을 시트로 휘감고 손가락으로 내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내가 죽으면, 당신 안 슬프겠어?"

"안슬퍼" 하고 나는 대답한다.

옛날에, 아빠가 가르쳐주었던 것처럼.

"죽는 건 슬픈일이 아니야"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거의 울음을 터트릴 것 같다.

애인은 죽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당신은 죽지마" 라고.

"이런 바보." 애인은 희미하게 미소짓는다.

내 머리를 끌어안고, 내 볼에 소리내어 키스를 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바란 대답이 아니었다.

나는 애인에게 "걱정할 것 없어" 란 대답을 듣고 싶었다.

"영원히 죽지 않을테니까" 란 대답을.

하지만 물론 애인은 그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에쿠니 가오리 / 웨하스 의자



"혼자 있을 때 상대를 생각하며 서글픈 마음이 된 적이 있어요?"

"물론. 이따금 있지.

특히 달이 창백하게 보이는 계절에는.

특히 새들이 남쪽으로 건너가는 계절에는. 특히...."

"어째서 물론이죠?"

"누구나 사랑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결여된 일부를 찾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다소의 차이는 있을망정 언제나 애절한 마음이 되는 거야.

아주 먼 옛날에 잃어버린 그리운 방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거지.

당연한 일이야."


무라카미 하루키 / 해변의 카프카



아침 일찍, 얼굴을 아직 벽 쪽으로 돌린 채,

창문의 커다란 커튼 위쪽으로 새어드는 빛살이

어떤 빛깔인지 보지 않아도 나는 이미 날씨를 알 수 있었다.

한길에서 맨 처음 들려 오는 소리가

습기로 부드럽게 굴절되어 들려 오는지,

아니면 차갑게 밝아진 드넓은 아침의 높게 울리는

공허한 공간을 화살처럼 떨면서 들려 오는지에 따라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첫 전차의 바퀴 소리가 나면,

나는 전차가 비를 맞으며 떨고 있는지,

아니면 푸른 하늘을 향하여 출발하는지 분간한다.

또는 그 소리보다도 먼저 무엇인지 더 빠르고 날카로운 방사가 있어,

그것이 나의 수면 속으로 숨어들어 와서,

거기에 눈이 올 것을 예고하는 애수를 펼쳐 놓을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마르셀 프루스트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디에 있는가. 내 생각은 하지 않을까.

보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 전화가 울려 주길 숨이 막히도록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전화해주지 않으면 도저히 이 순간을 넘길 수가 없다.

이대로 꼼짝도 할 수가 없다.

내가 당신 생각을 할 때 당신도 나를 생각할까.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막막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경린 / 나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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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Victor Jeong
JC BILLIO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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